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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리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by 고슴도약 2022. 10. 14.

명실상부 인류 최초의 스피치 학원이다. 그 학원 원장들이 바로 우리에게 소피스트로 잘 알려진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이소크라테스였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법률 서비스, 변론 훈련, 말하기 연습 등을 시켰다. 사람들은 학원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의 설득 기술은 날로 발전했다. 수사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즉 수사학이란 각 상황에 맞는 설득 방법을 찾는 학문으로 내가 처한 현실에서 가용할 수 있는 최고의 설득 방법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시 수사학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고, 그 절박함 때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수사학의 내용은 풍성해지고 기술은 더욱 진화하였다. 그 당시에는 법정에서의 변론과 정치 연설이 중요시되었다. 전제 군주가 사라지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광장으로 모여 대화를 하였고, 말 잘하는 사람은 정치인으로 나설 수 있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던 광장 아고라, 공공 체육시설 짐나지움은 수다와 대화의 공간이었다. 초기 소피스트들은 짐나지움에서 스피치를 가르쳤다. 그들에게 짐나지움은 체육시설 그 이상의 의미였다. 정신 수양을 위해서는 육체 수양이 필수적이었고, 그리스 성인들은 체육관에 모였으며 그곳은 점차 소통의 공간이자 소피스트의 영업장소가 되었다. 이처럼 광장과 법정에서 수사학의 힘이 발휘되면서 수사학은 생존의 도구이자 무기이며, 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곧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하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수사학의 중요성이 언급된다. 방패를 잘 만드는 장인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방패를 만들어줬는데 방패의 한쪽 면에는 전쟁의 모습이 다른 한쪽 면에는 시장에서 논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전쟁에서는 칼이 사람을 죽이지만 평상시에는 혀가 무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절반 이상이 영웅들의 연설로 채워진 것도 그들이 얼마나 말을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는 의사가 할 수 없는 일을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약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말기 환자들을 말로써 설득하여 더 살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야말로 말이 인류 역사의 중요한 도구로 전면에 등장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키케로는각각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위대한 연설은 영혼의 울림이며, 웅변은 지혜의 산물이다. 사람의 멋이 정신에 있다면, 그 정신과 빛은 말솜씨에 있다. 철학이 만학의 왕이라면 수사학은 만사의 여왕이다. 그 당시 말은 생존 수단일 뿐만 아니라 설득의 도구로써 다양한 논의와 발전을 거듭했다. 물론 민주주의가 쇠퇴하며 수사학이 퇴색하기도 했지만, 고대 그리스의 치열한 논의와 실전 경험들은 아직도 유효하다. 수사학은 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심리학, 논리학의 기초다. 몇 가지 실증적, 역사적 자료가 추가됐을 뿐 현대에도 그 기본 원칙은 통한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반응 없기로 유명한 스파르타 청중을 대상으로 연설했다. 정말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는 스파르타 청중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소크라테스에게 소피스트 히피아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크라테스여 영웅과 남자들의 혈통, 도시국가가 탄생한 배경 그리고 모든 고대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들 나는 그들 때문에 이것들을 연구했습니다. 퇴근 나는 스파르타 젊은이들이 실천해야 할 아름다운 행동 양식에 대해 연설해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한 적절한 단어 선택, 또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사례가 많이 들어간 담화문을 만들었습니다. 스파르타에서는 기하학이나 산술학 혹은 언어에 대한 상투적인 강의로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히피아스가 청중을 분석하지 못한 소크라테스를 비판한 것이다. 히피아스는 스파르타 사람들의 관심과 습성을 파악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와 사례를 찾아냈다. 심지어 히피아스는 대철학자 소크라테스 앞에서 아래와 같은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 해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안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순식간에 150 미나를 벌었습니다. 심지어 20미나는 가난한 마을인 이나코스에서 벌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소피스트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들은 불멸의 것은 없다 라는 말 한마디를 아래 처럼 다양하게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존재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남에게 전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 역시 소피스트의 말하기 능력만큼은 인정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프로타고라스는 같은 주제에 대해 혼잣말하거나 강의할 때, 틀린 말을 하지 않으면서 길게 말할 수 있고, 누구보다 짤막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에는 불만이 많았다. 사람들을 현혹하며 오직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말을 하는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소피스트의 수사학은 재주의 탈을 쓴 아첨, 영혼을 홀리는 기술을 가르치는 사기술로 폄하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어떻게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가? 라며 비판하였고, 플라톤은 정치철학은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체육이지만, 수사학은 겉모습만 치장하는 화장술에 불과하다. 라고 질타했다. 여러 문헌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주류 철학자들은 소피스트를 극도로 싫어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당시 주류 철학자들은 소피스트에게 궤변론자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이 깊은 성찰과 고민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면 소피스트들이 그 지식을 전파하여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후대의 주류 철학자들은 그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의 모함으로 죽었다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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